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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제 모습 되찾는 비봉산..역사는 빠졌나

2018-10-15

김성수 기자(lineline21@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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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2015년부터 시작된 비봉산 제 모습 되찾기 조성 사업이 막바지 작업에 들어 갔습니다.
비봉산은 예부터 진주의 진산이라 불리며 신성시 됐던 터라 공원 조성 이후 모습에
대해 지역민들의 관심이 높은데요.
(여) 산에 관한 역사나 지명 유래 등에 대해 그 흔적을 찾아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도은 기자입니다.

【 기자 】
고려 전기, 거란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강민첨 장군부터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을 편찬한 강희맹 등
큰 인물을 배출한 진주.

사람들은 진주에 뛰어난 인재가 많은 이유를
대봉산 때문이라 믿었습니다.

진주 출생의 인재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많이 오르자
위협을 느낀 다른 지역 출신 고위 관료들은
왕에게 대봉산의 기를 억압하라 모함합니다.

봉황의 왼쪽 날개에 해당하는 말티고개에 길을 내는 한편
산의 이름까지 강제로 바꿉니다.

▶ 인터뷰 : 강호열 / 진주 강씨 대종회 사무국장
- "비봉산이 고려 시대 때 대봉산이었다가 이조(이성계) 때 '날 비'를 써서 비봉산이 되었지 않습니까. 왜 그리 했냐면"
▶ 인터뷰 : 강호열 / 진주 강씨 대종회 사무국장
- "고려 시대 때 진주 강씨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 봉을 날려 보낸다..."

이후, 진주 사람들은 날아가는 봉황을
막기 위한 장치를 설치합니다.
비봉산 주변 지역의 지명을
이용하는 방안을 고안해 낸 것.

대표적인 것이 망경산의 원래 명칭인 망진산.
'그물 망'과 '떨칠 진'을 써,
날아가는 봉황을 잡겠다는 의미를 넣었습니다.

남강을 옆으로 줄지어 선
망경동의 대나무 숲 역시
대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봉황을
붙잡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이러한 역사는 비봉산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SU]
지금 제 뒤에 있는 정자의 이름은 비봉산의 옛 이름인 대봉산에서 따온 대봉정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러한 비봉산의 역사나 지명유래를 알 수 있는 흔적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16년부터 진주시는
91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비봉산 제 모습찾기' 조성 사업을 착수했고
봉황숲 생태공원과
봉황교와 비봉산을 잇는 생태 탐방로 등
3개의 테마 등산 코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를 두고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비봉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이
외경에만 치우쳐 진 것이 아니냐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 인터뷰 : 황찬규 / 진주시 장대동
- "(비봉산 역사를 알 수 있는) 그런 게 아직까지도 표지판이 없는가,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움이 있고..."

▶ 인터뷰 : 강동욱 /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 "아침에 운동장소로 활용되다 보니 좀 여유를 가지고 비봉산을 걸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좀 적은 것 같습니다."
▶ 인터뷰 : 강동욱 /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 "그래서 지자체라든지 지역의 단체들이 '비봉산 역사 알기', '비봉산 역사 알기 위한 걷기'등의 이런 여러 행사들을"
▶ 인터뷰 : 강동욱 / 진주문화사랑모임 상임이사
- "펼쳐 가지고... "

훼손돼 외면 받던 비봉산이
제 모습 되찾기 프로젝트로 인해
시민들이 다시 찾고 있는 가운데.

비봉산의 옛 이야기나 지명 유래와 같은 역사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SCS 이도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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