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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R) "100년 만에 하동 이병홍 선생 독립의지 기린 비문 찾았다"

2019-02-12

조진욱 기자(mudcho@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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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이병홍 선생을 아십니까 3.1만세운동 당시 하동에서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인물인데요.
(여) 그동안 만세운동 이후 행적이 묘연했는데, 최근 그의 묘와 독립의지를 기린 비문이 확인됐습니다. 조진욱 기잡니다.

【 기자 】

1919년 3월 18일.
당시 하동장터에서
낭독된 대한독립선언서입니다.

전 적량면장인
박치화 선생을 비롯한
12명이 작성한 건데,
이중 한문으로
'이병홍' 이란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하동군 양보면 출신인 이병홍 선생은
당시 법률사무소 격인
대서소를 운영하며,
독립선언서를 함께 작성하는 등
하동의 만세운동을 이끌었습니다.

▶ 인터뷰 : 정재상 /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 "그당시 이병홍 선생이 하동 대서소를 했습니다. 거기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곳에서 하동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하고 해서"
▶ 인터뷰 : 정재상 /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 "3월 18일 날 만세운동을 할 때 낭독을 했던... "

하지만 만세운동 이후엔
선생의 발자취가 묘연했던 상황.

그런데 최근 하동군 진교면의
한 비석으로 인해
그의 행적이 보다 구체화됐습니다.

"지사 합천이군 병홍지묘"

합천 이씨인 이병홍 지사의 묘라
적힌 비석 뒷면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버린 님이여
너의 뼈는 썩을지라도 혼은 꺼지지 않을지니
나는 너를 위로 하노라."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글쓴이는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홍권 선생으로
이들은 진주농업보통학교,
지금의 경남과학기술대학교를
함께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비석엔
기미년 음력 윤달
7월 13일이라 적혀 있어
이병홍 선생이
3월 18일 만세운동 이후 반년 만에
순국했다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선생의
행적을 잘 몰랐던 후손들은
관심을 갖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을 보이며,
지금이라도 선조의 업적을 높게
평가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 인터뷰 : 이현철 / 이병홍 선생 후손
- "빨리 찾아드리고 했으면 좋았었는데 좀 미안한 게 더 많습니다. 될 수 있는데까지는 다 해드려야 후손으로써 미안한 게"
▶ 인터뷰 : 이현철 / 이병홍 선생 후손
- "조금 만회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

향년 24세로 생을 마감한
죽헌 이병홍 선생.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 등은
이번에 밝혀진 자료를 토대로
정부 서훈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scs 조진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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