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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진주성 외성 공개.."성벽 오롯이 남아"

2018-09-11

이도은 기자(dodo7@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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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진주성 반쪽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진주성 외성 이야기인데요.
(여) 기록으로만 만나야 했던 외성이 일부 발굴되면서 그 실체가 공개됐습니다. 이도은 기자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기자 】
지난 4월말부터 시작된 진주성 외성터 정밀 발굴조사.

조사가 시작된 지 약 4개월 만에
진주성 반쪽, 외성의 남문 성벽 일부가 공개됐습니다.

길이는 10m,
너비는 6m에서 7m,
높이는 최고 4m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SU]
여러분은 현재 진주성의 남문에 해당되는 외성벽을 지금 보고 계십니다. 남문의 외성벽은 기록에 의하면 6m에 달해 있다고 남아 있는데요. 현재 제 옆에 있는 외성벽의 높이는 4m로 외성벽의 대부분이 남아있는 셈입니다.

임진왜란 전, 후로
여러 차례 고쳐 지은 흔적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CG]
성벽을 보면 축조 시기를
크게 두 시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첫 축조가 작은 돌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인 성벽이고
두번째 축조가
비교적 정교하고 잘 다듬어진 돌로 쌓인 성벽입니다.

아래 부분에서는 15세기에 주로 쓰던 분청이 출토됐고
윗 부분에서는 17세기 유행하던 기와가 출토됐습니다.
[CG 끝]

▶ 인터뷰 : 이제헌 / 한국문물연구원 고고학연구실 부장
- "이번 조사로 인해서 생각보다 (외성벽이) 많이 깊이 남아 있음으로써 진주성의 축조 과정과 축조 연대, 축조 방법에 대해서"
▶ 인터뷰 : 이제헌 / 한국문물연구원 고고학연구실 부장
- "과정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고 이것으로 해서 조선 후기의 다른 성곽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100m에 달하는 외성의 남문 성벽이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이 부분이 주변에 비해
지대가 낮음으로써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아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인터뷰 : 김준형 /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
- "강가로 와서 배를 타게 돼 있었는데 그 가장 낮은 부분까지 성(현재 드러난 외성)이 쌓여 있었거든요. "
▶ 인터뷰 : 김준형 / 경상대 역사교육과 교수
- "평평하게 높은 부분을 제거해 버리고 낮은 부분은 흙을 쌓아서 평평하게 하면서 여기 그대로 흔적이 남아 있는 거에요."

시민들은 잘 보존된 외성벽을
구경하고 사진으로 간직했습니다.

▶ 인터뷰 : 강삼수 / 진주 신안동
- "이런 좋은 성터가 이곳에 발견됐다고 하는 것은 오랫동안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시민단체들은
보존상태가 좋은 외성벽을
어떻게 보존하고 복원할 것인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인터뷰 : 조창래 / 역사진주시민모임 상임대표
- "저는 당연히 성은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존을 전제로 해서 보존 위에 다시 옛날 모습을 "
▶ 인터뷰 : 조창래 / 역사진주시민모임 상임대표
- "되찾기 위해서 복원을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그 문제는 신중하게..."

임진왜란 당시, 조선백성의 울타리였지만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때 강제로
훼손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진주성의 반쪽, 외성.

10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그 가치와 역사가
후세에 잘 보존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SCS 이도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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