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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진주, 정원도시를 꿈꾸다 - 남강 품은 도심 속 정원 '진주성'

2025-03-11

김순종 기자(how2read@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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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정원문화를 다루는 세 번째 연중기획입니다. 외지인들이 진주 하면 떠오르는 곳, 아마 진주성일텐데요. 진주대첩이 일어난 역사적 명소이자, 지금은 진주를 대표하는 도심 속 정원이기도 합니다. 진주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되짚어 봅니다. 김순종 기잡니다.

【 기자 】
남강을 품은 천혜의 요새로
임진왜란 3대대첩 가운데 하나인
진주대첩이 일어난 진주성.

이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성터가 있었던 걸로 알려집니다.

이를 증명하듯
2018년
진주대첩 역사공원에서는
삼국시대 배수로와
고려시대 토성,
조선시대 외성 흔적 등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진주성.

지금은
시민들이 찾는 휴식처이자
관광객들에겐 유명한
도심 속 정원으로
주목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남강을 품고 있기에
남다른 풍광을
자랑하는 이윱니다.

조선시대 3대 누각인 촉석루와
과거 성을 지키는 지휘 장대이던
서장대와 북장대에 올라서면
남강과 원도심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2차 진주성 전투 후
논개가 왜장을 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는 의암바위,
그러한 논개를 기리는 의기사,
조선시대 승병을 키웠다는 호국사부터
진주대첩 당시 성을 지킨
김시민 장군 등의 신위를 모신
창렬사까지.
역사적 명소도 가득합니다.

성곽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도
진주성이 가진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주성이 지금과 같은 도심 속 정원으로
특색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그간 이어진
진주성 복원·정비사업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훼손된
촉석루는 1960년 복원됐고,
1960년대 말부터
성 복원 사업이 본격화됐습니다.

1972년에는 촉석문이,
1975년에는 공북문이 제모습을 찾았고,
성내에 남아 있던 민가 751동이
1984년 정리되면서
공북문 뒤로 지금과 같은
너른 공원이 생겨났습니다.

같은 해 들어선 국립진주박물관도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촉석문 앞에
진주대첩 역사공원이 준공돼
또 다른 명소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

진주성이 이 같이 모습을 바꿔가면서
성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CG IN]

2021년 진주성을 방문한 관람객은
총 52만 8,000여명.
지난해에는 그 수가
97만 3,000여명으로 증가했습니다.

[CG OUT]

시민들은 진주성이 가까이 있어
앞뜰처럼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표현합니다.

15:20:01~05 // 15:20:15~20
▶인터뷰 : 김순자/진주시 옥봉동
"매일 같이 여기 운동(하러 와서) 한바퀴 돌고 갑니다. 진주성에 오면 운동하기도 좋고..."

관광객들도 진주의 역사를 알아보고
편히 다녀갈 수 있는 곳이
진주성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15:23:06~11 // 15:23:42~54
▶인터뷰 : 박두서/서울 송파구 잠실6동
"조경이라든지 (이런 게) 잘 가꾸어져 있네요...환경이 삶에서 많이 강조되는데 (진주성처럼) 큰 공원이 있으면 생활 편의성이나 건강 증진에 있어서도 굉장히 (좋을 듯 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진주를 대표하는 사적지이자
도심 속 정원으로
자리잡고 있는 진주성.

진주시는 앞으로도
외성복원 등
진주성 제모습 찾기 사업을 통해
이곳을 진주의 대표관광지이자
도심 속 정원으로
발돋움 시킨다는 계획입니다.

Scs 김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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