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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 남해 대간첩작전, 잊혀진 '예비군' 이름

2018-06-09

차지훈 기자(zhoons@sc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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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지난 6월 6일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현충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도에 남해에 간첩이 들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십니까? 이때 투입된 병력은 만 2천 여 명으로 경남에서 벌어진 간첩사건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하는데요.
(여) 하지만 당시 예비군으로 참전했다 총상을 입은 이들은 위령제에 초청 받지도, 추모비 피해 기록에도 그들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이도은 기자입니다.

【 기자 】
[CG]
시간은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겨울 밤 자정이 다 되던 시각.
무장간첩이 탄 배가
남해 미조리 해안으로 들어옵니다.

2명은 해안에서 사살됐지만
나머지 1명은 금산 자락을 타고 도주했습니다.

이를 잡기 위해
투입된 군, 경찰, 전경, 예비군의 총 병력은
만 2천여 명.
[END]

[S/U]
"1980년 12월 1일, 남해 대간첩작전의 총격전이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금산 일대에서 벌어진 5일 동안의 교전 끝에
마지막 작전 날 오후 1시 20분쯤
간첩은 사살당합니다.

당시의 긴박했던 총격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

▶ 인터뷰 : 곽상두 / 남해 대간첩작전 참가 예비군
- "우리 예비군 소속 앞에 공비가 바위 틈에 숨어 있었던 거예요."

이날 격전 중 날라온 총알은
곽씨의 배를 관통했고
곽씨는 배를 개복하는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곽씨 옆에서 공비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또 다른 예비군 송씨 역시도
총알이 허벅지를 뚫고 허리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송씨는 이날의 총상으로 뛸 수 없게 됐습니다.

▶ 인터뷰 : 송효익 / 남해 대간첩작전 참가 예비군
- "몸이 그렇게 좋은 상태가 아닙니다. 많이 거동을 하거나 하면 이 다리를 절거든요."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관심 뿐이었습니다.

특히 곽씨는 부상 이후 2년 뒤
국가유공자가 됐지만
송씨는 37년이 지난 작년이 되어서야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들은 매해 열리고 있는
남해간첩작전 위령제에도 초대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송씨는 작년
직접 부대에 전화해
참석을 건의하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 : 송효익 / 남해 대간첩작전 참가 예비군
- "제가 자청을 해서 여기에 한번 앉혀만 달라... 딱 정가운데 자리가 아니어도 된다."

심지어 대간첩작전 당시
희생된 군인을 기리는 추모비에도
부상 인원 수만 기록돼 있어
송씨와 곽씨의 희생은 확인조차 어렵습니다.

몸에는 총알이
머리 속에는 그날의 총성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이들.

국가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희생은
여전히 조명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SCS 이도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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